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1878-1938) 선생은 우리나라 근대 민족운동의 큰 지도자이며 또 뛰어난 민족주의 사상가였다. 그는 우리 겨레가 일제의 침략과 지배아래 고통받고 있을 때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키고 또 독립을 되찾기 위한 구국독립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한말에 독립협회에 가담해 활동했고, 미국에서 공립협회(共立協會)를 조직해 지도했으며, 다시 국내로 돌아와서는 비밀결사인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해 애국지사들의 구국운동을 뒤에서 총지휘했다.

합병을 눈앞에 두고 망명을 떠난 그는 1910년대에는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를 이끌었고 흥사단을 조직했다. 이어 3.1 운동이 일어나자 중국에 건너간 그는 임시정부의 기초를 확립하고 국민대표회(國民代表會)를 여는데 힘썼으며,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만들었다.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본격적인 반일 투쟁을 위해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韓國對 日戰線統一同盟)을 결성하려고 노력하던 중, 그는 불행히도 이듬해 일제 경찰에 체포당해 국내에 끌려오게 되었다.

국내에서 두 차례의 옥고를 치른 끝에 그는 결국 해방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도산은 쉴 새 없는 구국독립의 실천 활동 속에서도, 한편으로 우리겨레가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이며, 더 나아가 살기 좋은 이상적인 나라를 만들어 영원히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나름대로 깊이 연구하였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결론을 얻게 되었다.

먼저 그는 우리가 일제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적절한 기회에 그들과 전쟁을 해서 승리하는 데 있다고 보아 최소한의 근대적 무력을 준비해 두자는 독립전쟁준비론을 정립했다. 동시에 그는 독립을 이룬 다음에는 모든 국민들이 자유롭고 고르게 잘 살 수 있도록 참된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민주국가건설론을 갖고 있었다.

또 독립을 이루고 민주국가를 세워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족을 위해 헌신할 지도적 인물들의 양성이 중요하다고 본 그는 민족운동 간부의 양성을 위한 흥사단운동론도 폈다.